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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나 여행을 오래 하면서 이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싶어졌다. 어줍잖은 막걸리 철학 말고 말이다. 천년의 세월을 관통해도 유효한 철학, 죽음도 두렵지 않은 철학 말이다. 사실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즐기는 산행과 여행만을 한다면 철학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인생과 자연을 표현하는 시나 한 수 읊을 실력은 쌓이겠다.

 

▲ 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중 등구재 아래 약초임도에서...

 

지리산 아래 벽송사(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소재)에선 참으로 많은 스님들이 도를 깨우쳤고 조선시대 수많은 선비들이 가르침을 받은 곳이다. 벽송사는 청허휴정(서산대사), 부휴선수 라는 유명한 선사들을 배출하였고 오늘날 한국불교 출가 스님의 모두가 서산문파와 부휴문파에 속한다. 특히 서산대사는 벽송산문의 3대조사가 된다.

 

▲ 벽송사, 지리산 둘레길 중, 의중에서 분기 되는 지선

 

벽송사는 6.25 이후 공비토벌작전으로 인해 완전소실 되었으나 이후 중건되었다. 하지만 뒤에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은 수백년의 세월 동안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때엔 30개의 전각, 10여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상주하는 스님만 3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근 300년간 조선불교 최고의 중심도량이었다고 하니 다른 자잘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벽송사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서산대사(청허휴정)을 논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일반 사람들에겐 가장 유명한 분이기 때문이다. 휴정의 법맥 즉, 사상의 계통을 그 자신이 언급한 것을 보면 벽송(碧松)은 조(祖)요, 부용(芙蓉)은 부(父) 라고 했다. 벽송지엄은 벽송사를 조선시대 때 중창한 벽송사의 1대조사이고 부용영관은 벽송사의 2대 조사이다. 3대조사가 바로 청허휴정(서산대사)이다. 휴정은 1000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일반 사람에게 가장 유명한 인물이 사명유정(사명당) 대사이다.

 

벽송사의 법맥을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면 태고화상이 중국 무하산에 들어가 석옥을 사하였으며 이것을 환암에게 전하였고 환암은 구곡에게 구곡은 정심에게 정심은 지엄에게 지엄은 영관에게 영관은 서산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알기 쉽게 정리해 보자면, 태고화상(중국에서 득도)-환암-구곡-정심(광점동에서 광주리 만들며 수행)-지엄(정심에게 배우려 왔다가 배움은 커녕 5년간 광주리만 만들다가 화가 나서 다 때려치우고 하산하던 도중 득도, 정심이 열반 한 후 가까운 곳에 있던 옛 신라시대 사찰터를 벽송사로 중창함, 벽송사의 1대조사)-영관(벽송사 2대조사)-서산(벽송사 3대조사) -> 스님들이 일생을 수행한 결과를 너무 쉽게 정리한 듯 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도를 깨우치는 수행 방법은 중국불교의 영향이란다. 불교의 원산지인 인도는 열반에 들 때까지 수행만 한다고 한다.

 

벽송사를 거쳐간 스님들은 벽송사에만 안주한게 아니라 때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지리산 곳곳을 다니거나 팔도의 유명한 산을 다니며 수행하기도 했다.

 

▲ 도인송

 

벽송사에 도착해서 멀리 도인송을 바라보면 소나무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근데 가까이 가면 엄청 높고 크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표지석엔 수령 300년, 나무둘레 1.2m로 표기되어 있다. 둘레를 직접 재 보니 1.2m가 아니라 3.7m이며 직경이 1.2m였다. 직경을 재고 난 뒤 둘레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 미인송

 

미인송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너무 숙여 탈이다. 그래서 받침대로 고정되어 있다.

 

▲ 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중 등구재 아래 약초임도에서...

 

▲ 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중 등구재 아래 약초임도에서...

 

위의 세명의 스님들 중 득도한 스님은 누구일까? 내 눈에는 전부 득도를 한 듯 해 보인다. 돼지 같다고 말하는 이성계에게 무학대사는 이런 말을 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대로 표현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좋은 말을 해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천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가르침을 배울 땐 먼저 산을 산으로 볼 수 있고 물을 물로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로 마음을 비우는 자세 말이다. 안타깝게도 마음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사물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하겠다.

 

지리산 둘레길, 함양구간 일대에 펼쳐져 있는 옛길들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수행자들이 걷고 또 걸었던 순례의 길이다. 창원마을 위, 지리산 제일문이 있는 오도재 역시 벽송사 청매인오 조사가 이 고개를 넘고 또 넘다가 오도(도를 깨달음)를 했다고 해서 오도재로 전해 내려 온다. 오도재에서 금계마을까지의 자동차 도로는 지리산권역 중 유일하게 쑥밭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반야봉에 이르는 대부분의 지리산 주능선을 파노라마로 조망 할 수 있는 도로이다.

 

▲ 지리산 둘레길, 의탄교

 

벽송사와 칠선계곡, 국골 그리고 어름터골이 있는 추성마을, 그 위의 지리산 천왕봉에서 먹구름 사이 흰구름이 쏟아 오르고 있다. 금계마을에 있는 지리산 둘레길 함양안내센터에서 의탄교를 건너 의중마을 당산쉼터까지 가자. 여기서 용유담-동강으로 가는 둘레길 본선과 서암정사-벽송사로 가는 지선이 분기된다.

 

의중에서 옛길을 따라 서암정사까지 도달 한 후 도로를 따라 벽송사에 도착하게 된다. 서암정사 이후 벽송사까지는 둘레길 이정표는 없고 벽송사 방향표지판을 보며 길을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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