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기법과 추성돌래길 이야기

Posted on 2013. 4. 28. 15:24
Filed Under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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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좋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를 어떻게 공감시키느냐입니다. 여기에서는 테마여행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대해 고민해 볼텐데요. 먼저 스토리텔링의 기법에 대해 알아 보고 테마여행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직접 만들어 보겠습니다.

 

1.스토리텔링 기법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텔링'은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간다면 스토리텔러와 듣는 이 사이에 상호작용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야기(story), 청자(listener), 화자(teller)가 존재하여야 합니다.

 

쉽게 표현한다면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옛날옛적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어린아이들은 쉽게 몰입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일지라도 강한 반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꼼꼼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면 쉽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응 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게 됩니다.

 

스토리와 액션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성은 스토리 액션인데요. 스토리 보다는 액션이 중요합니다. '금도끼 은도끼' 설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체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이 금도끼가 네것이냐?"라는 연못속의 산신령이 취한 액션이 청자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스토리를 가질지라도 액션의 구성에 따라 기억에 오래 남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습니다.

 

도입부와 반전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는 도입부 반전인데요. '금도끼 은도끼' 설화의 경우 산에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연못에 도끼를 빠뜨린다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도입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나무꾼을 등장시켜 반전의 요소를 가미시켜 놓았습니다. 만약 반전이 계속된다면 스토리 내내 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러와 리서너(화자와 청자)

청자와 화자는 이념, 사상, 가치관, 종교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편향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거나 스토리텔링을 하여야 합니다. 주관적이며 편향적인 스토리텔링은 청자의 무관심을 받거나 좋지 못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캐릭터 설정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비정상적으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캐릭터는 청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영웅 캐릭터일지라도 중대한 결함이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야만 그 캐릭터에 청자들이 동질감 또는 연민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는 초반에 잘못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해결하는 과정이 스토리가 됩니다. 완벽한 캐릭터라면 스토리 또한 무미건조할 뿐입니다.

 

예제를 통해 본 스토리텔링

반전을 위해선 복선과 암시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을 극대화 시킨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2007년, 일본)인데요.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잔잔하게 깔아둔 복선과 암시가 영화의 마지막 10분 동안 관객들에게 메가톤급 눈물폭탄을 선사합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복선, 암시, 반전의 기가막힌 배열

 

액션 스토리텔링의 경우 스토리는 액션을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남자들이 즐겨하는 군대이야기가 대표적인데요. 전쟁 액션 영화의 경우에도 스토리는 오로지 액션을 위한 장치, 즉 도입부에서 전투(액션)을 위한 작전 설명이 영화의 스토리가 됩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푸른거탑'도 마찬가지로 스토리 보다는 군대를 다녀 온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액션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액션 스토리텔링의 경우에도 반전의 요소가 있어야만 빅재미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푸른거탑, 공감가능한 짧은 에피소드 형식

 

 

정리해 보면, 스토리텔링은 도입-위기-절정의 3단계가 일반적인데요. 도입부-복선,암시,액션,반전-절정의 형식이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단순하게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액션을 엮어서 스토리를 만드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분량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테마여행의 콘텐츠 설명은 짧은 시간안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압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추성돌래길 스토리텔링

추성돌래길에 대한 설명은 http://gpser.tistory.com/40 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추성돌래길의 테마 콘텐츠 포인트를 열거하자면, 서암정사/벽송사/벽송능선,선녀굴/어름터/용바위/망바위,성안,성터/국골/칠선계곡,선녀폭포/두지터 등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설화, 역사)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청자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데요. 추성돌래길은 네가지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벽송사에 얽힌 절의 역사, 또 하나는 구형왕에 얽힌 설화, 또 하나는 빨치산 정순덕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지리산에 얽힌 전설들입니다.

 

먼저 각각의 콘텐츠에 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 기법에 따라 편집-배열을 하여야 합니다. 추성돌래길의 경우 장소와 스토리가 연계되어 지고 시간의 흐름이 연결되기 때문에 어디를 시점으로 잡느냐에 따라 하나의 스토리에 두가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벽송사의 역사

 

-도입부(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광점동)

1500년경 송지암이라는 전북 부안사람이 있었습니다. 송지암은 10세때 사서삼경을 읽고 20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장군으로 전장에 나가 수많은 공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것에 허망함을 느끼고 계룡산을 비롯하여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불교수행을 합니다.

 

-복선,암시(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광점동)

57세가 되던 해에 마천 추성에 법계정심이라는 유명한 대사 있다는 말을 듣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 광점동으로 오게 됩니다. 법계정심 스님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져 매일 싸리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서 장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송지암이 법계정심 스님의 문하에 들어왔으나 그 역시 허구헌날 광주리를 만드는 일을 시킬 뿐이었습니다.

 

-액션,반전(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광점동)

장장 5년을 광주리만 만들었던 송지암은 법계정심 스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서 떠나겠다고 합니다. 이에 법계정심은 송지암에게 "가고 오는 것은 자유이니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합니다. 화가 난 송지암은 그길로 짐을 싸서 떠납니다. 하지만 떠나는 도중에 법계정심 스님의 말을 되새기다 다시 돌아와 스님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사죄하다가 득도를 하게 됩니다. 그 후 3개월뒤에 법계정심 스님은 열반에 들게 됩니다.

 

이곳 광점동은 법계정심과 송지암이 광주리를 만들었던 곳에서 지명이 유래됩니다. 광주리의 토속어가 강아리여서 강아리점으로 불리었는데요. 현재는 광점동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절정(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

송지암은 법계정심 스님이 열반에 든 뒤 벽송사를 창건합니다. 그가 바로 벽송지엄 대사인데요. 그의 문하에는 서산대사, 부휴선수, 사명대사 등의 무수히 많은 대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산대사와 부휴대사는 현재도 우리나라 불교계의 양대산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벽송사의 창건에 대한 부분만으로 스토리텔링을 해 보았습니다. 추성돌래길 전반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이미 해 두었는데요. 14페이지나 되어서 분량이 많다는 점과 스토리텔링 실력이 좋지 못하다는 부분 때문에 공개는 어렵습니다.

 

3.작업후기

제가 몇 주전에 추성돌래길 테마여행 안내를 했었는데요. 불교 이야기 보다는 빨치산 정순덕에 얽힌 비극적인 우리나라 현대사가 대다수의 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부분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여행객들의 피로도와 적절한 시간안배, 기억력 등으로 인해 준비한 스토리텔링 분량의 4분의 1도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구형왕 설화의 경우에 정설의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 청자들의 공감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또한 여행 노선의 진행 방향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흐름이 반대로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고심도 해 보았습니다.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지만 각각의 콘텐트에 대한 설명의 경우에도 많은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더군요. 준비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 스토리텔러로서의 경험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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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전설 따라 걷는 지리산 추성 돌래길 1편

Posted on 2012. 5. 28. 01:26
Filed Under 트레킹 코스/추성 돌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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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 돌래길은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추성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계곡들을 넘나드는 옛길 트래킹 코스입니다. 많지 않은 추성 돌래길에 대한 블로그 포스트들은 이 숲길 명칭을 혼란스럽게 사용하는데요. 그 예로 추성 돌레길, 추성 둘레길 등으로 말이죠. 추성 돌래길의 '돌래'는 추성마을 주민들이 지었습니다. 처음엔 돌래? 안돌래? 길이었습니다. 글수가 너무 길다고 생각되어서 돌래길이 된 것입니다.

추성 돌래길은 옛길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이 돌래길의 곳곳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고, 지명에는 역사와 민초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만약 이 옛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추성 돌래길을 거닌다면 많이 아쉬우리라 봅니다. 이 글(1편)에선 그 옛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합니다.

추성마을

지리산 자락의 추성마을은 크게 어름골, 국골, 칠선계곡이 있습니다. 그 중 칠선계곡은 한국의 3대 계곡이며, 천왕봉에서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를 간직한 채 추성마을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노선의 대부분이 비법정 탐방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지리산의 마지막 남은 원시림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사진1]함양군 내지리 등산로

위의 스크린샷은 함양군 방면 지리산 등산로입니다. 구글어스를 3D로 캡쳐 했습니다. 빨간색/녹색 안경을 착용하시면 3D로 보입니다.

이러한 추성마을의 유래는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1500년전인 금관가야 부터 시작됩니다. 신라군에게 쫒긴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은 지리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백성들을 데려와 '성안'이라는 험준한 산세에 '추성 산성'을 쌓습니다. 그 대부분은 자연을 이용한 천연의 성이 되고 일부분 성벽을 쌓게 됩니다.

[사진2]빨간선은 천연의 성과 성터를 추정한 것입니다.

성안의 입구는 '석문'으로서 현재는 암석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바위가 있는데 그곳이 신라군의 침입에 대한 망을 보던 '망바위'(사진3)입니다. 망바위에는 석문을 지나 침입을 시도하는 신라군들을 공격하기 위한 둥근 모양의 '투석'(사진4)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추성마을'의 지명은 유래됩니다.

[사진3]망바위 조망 [사진4]투석

칠선계곡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마을이 '두지터'이며 쌀 창고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광점동을 지나 나오는 곳이 '어름터'인데 얼음 창고 였습니다. 이 지명들의 유래 역시 구형왕이 신라군과 대치할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한 '성안'의 서쪽 계곡은 나라 국을 사용해 '국골'로 불리웁니다.

1500년 전 신라군과의 대치

망바위(사진3)에 올라서면 신라의 대군이 진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인 의평,금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오도재를 넘어오는 길목이 확연하게 들어옵니다. 최적의 망루인 셈입니다. 망바위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용바위'가 있습니다. 구형왕은 이곳 용바위에 올라 마천고을의 '촉동 마을'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진5]용바위에서 촉동마을 조망

[사진5]의 빨간색 원이 삼봉산 아래 촉동마을이며, 구형왕은 바로 저곳이 대궐터라며 촉동 마을에 궁궐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구형왕의 대궐터는 '빈대궐터'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그 자리에 등구사라는 절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빈대궐터(720m)와 용바위(774m)의 해발 고도는 비슷합니다.

구형왕은 궁궐 공사를 하던 중 신라군의 침공을 받아 후퇴를 거듭하며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도달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구형왕의 돌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구전과 정설의 역사

위의 구형왕 전설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입니다. 신라에게 금관가야를 순순히 갖다 받힌 김유신의 증조부 구형왕에 대한 정설의 역사와는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설과 다른 전해내려 오는 구전일지라도 전해내려 오는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들은 시대를 살아갔던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을 수 있고 삶에 여유를 찾기 위한 이야기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구요.

1500년 전 국가를 신라로 넘기면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던 금관가야의 10대 왕이자 마지막 왕 구형왕의 실제 역사 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해가는 그런 왕을 백성들은 원했을 겁니다. 백성들의 그런 염원이 구전과 지명을 통해 현재까지 내려 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추성마을의 역사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없었으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연구(?)에 의하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격전장이었을 마천고을에서 추성과 성안은 신라군의 보급기지 및 말을 훈련 시키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특히 성안의 말달린 평전이라는 지명과 더불어 마천의 마을이름이 내마, 외마, 도마 등과 같이 말과 관련된 지명이 있고 옛 문헌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데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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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선 11.3 Km의 원점회귀 전체코스와 총연장 13.452 Km의 '추성 돌래길'을 1,2,3 코스로 나누어 미리 여행 해 보겠습니다. 아래의 안내도(추성마을에서 사용하는)에 기입 된 구간 별 Km는 구간의 중복으로 인해 실제 총 연장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 계산한다면 총 연장이 16.1 Km가 되나 중복을 제외 하면 13.452 Km가 됩니다. GPS를 사용하시는 분들을 위해 GPS 데이터도 첨부하겠습니다.

 

<안내도는 삭제하였습니다. 2편에서 공개 예정>

 

GPS 트랙 및 포인트 원본

※ 구전의 구성은 추성마을 주민의 의견 및 지리산 전설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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