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실전강좌]산길, 등산로의 이해와 GPS 활용법 1탄

Posted on 2015. 4. 2. 23:52
Filed Under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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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이글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과 분석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산길의 모델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논문과 같은 학술적인 내용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아웃도어라이프 즉, 야생에서 안전하게 산행을 마치는데 도움을 조금이나마 주리라 기대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손쉽게 GPS 기능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등산 관련, 지도관련 어플을 실행하면 산길을 잃어버릴 염려성이 적습니다. 그러나 등산로의 안내도나 방향표지판들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굳이 관련 어플이 없어도 길을 잃어버릴 염려성이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산행객, 등산객들은 길을 찾고 안내받기 위해서 GPS를 사용하는게 아니라 '기록'의 용도로 사용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GPS를 지참하는 이유가 길을 안내받기 위해서 또는 혹시 모를 위험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안전' 때문일 것입니다. 안전을 염려하는 이유는 자연 또는 야생에 길들여지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야생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또는 길들여진 그곳 보다 훨씬 더 안전합니다.

 

위험요소는 인재가 훨씬 더 많습니다. 자연재해는 폭풍, 폭우, 폭설, 눈사태, 번개, 낙석 등이 있겠지만 도시에서 신호등 지키듯이 조심하거나 일기예보를 눈여겨 보았다면 대부분은 피해갈 수 있습니다. 산악에서의 인재에 의한 위험은 기상악화에서도 무리한 산행, 정비된 등산로가 아닌 곳을 이용하다가 낙석 등의 위험상황 직면, 젊었을 때의 체력만 생각하고 산행에 나섰다가 체력소진에 의한 부상 또는 탈진, 산행경험 미숙으로 인한 저체온증 등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건데 야생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화재, 교통사고, 건물붕괴, 살인강도 등등 수많은 사고와 재난과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주 안전하게 별빛을 보며 잠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GPS가 산행에서의 안전을 담보하기 보다는 산행경험이 안전을 담보합니다.

 

이글에서는 인간이 야생에 길들여지는 많은 방법 중, 산길과 등산로의 형성 원리를 알고 나서 산행에서 길을 찾지 못하거나 잃었을 때 등산로와 산길을 빠른 시간내에 다시 찾는 방법과 아울러 산길이 없는 곳에서 마치 동물들 처럼 편하고 안전하게 등산하거나 하산하는 방법을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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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탐구1] 옛 지형도를 통해 본 산길 - 오도재

Posted on 2013. 8. 25. 18:48
Filed Under 함양 산길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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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1914년~1918년 사이에 일본 육지측량부에 의해 1:50,000 지형도가 간행 되었다. 이들은 1등도로-2등도로-달로-연로-간로-소로로 주요 도로망 등급을 규정 해 놓았다. 식민지 관리와 자원의 수탈을 위해선 먼저 지도를 만드는게 순서였던가. 세금을 수탈하기 위한 지적도도 얼마나 꼼꼼하게 만들었으면 지금도 당시 만들어진 지적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을 정도다. 어쨌든 이 지형도를 통해 옛 산길에 대해 탐구를 시작해 보자.

 

산길탐구 1편 : 오도재 '지리산 가는길 도로'

 

조선시대, 한량한 선비들이나 유명한 산과 들을 오가며 유랑을 했고 시도 지어서 읊었겠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러한 여유는 없을터이다. 그런 그들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던 이유는 마을을 왕래하거나 교역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1:50,000 지형도에서 주목할 부분은 연로와 소로이다.

 

연로는 잇닿은 길, 즉 계속 연결된 길을 말한다. 현재의 지방도로라고 하겠다. 소로는 좁은 길을 뜻 한다. 현재의 마을길이라고 하겠다. 운송수단이 발전하고 굳이 옆마을과의 직교역이 필요 없어진 지금은 소로라는 도로망이 등산로나 트레킹 길로 변화되고 있다는데 주목을 하자. 연로 또한 지금은 사장되었거나 등산로로 변화된 곳도 주목을 해 보자.

 

소로는 보통 고개를 넘어 옆 마을로 연결된다. 산의 능선을 넘는다는 말이다. 현재의 등산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등산로와 다르다. 우마의 이동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옆 마을에 소를 팔러 가야하는데 등산로와 같은 길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옆마을로 통하는 가장 가깝고 편한 계곡을 통해 산 능선까지 올라갔다가 고개를 넘어 다시 계곡을 통해 내려간다.

 

▲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등구재(출처: 규장각)

 

위의 일제 육지측량부 1:50000 지도를 보면 좌측 당시 운봉 산내 상황리에서 등구재를 거쳐 함양 마천 창원리로 넘어오는 점선으로 된 소로길이 보인다. 현재 이 소로는 지리산둘레길 '꽃가마타고 시집가던 길'이 되었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지나가는 숲길이 되었다. 예전 도로였던 관계로 현재도 등구재 가깝게 이르기까지 농사를 짓고 있거나 묵혀둔 전답들이 많다. 물론 현재와 비교해 길이 똑 같다고는 볼 수 없다. 아니, 다른 부분이 많다. 10년만 지나도 강산이 변한다는데 하물며 100년이 지났다.

 

소로로 분류되는 옛 도로, 옛 길의 특징을 지형도에서 자세히 보면 능선을 타고 가지는 않는다. 큰 계곡, 작은 계곡 그리고 산 사면길로 나 있음이 보인다. 비단 이 구간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똑 같이 형성 되어 있다. 현재의 등산로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숲길이 아니라 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 구간 또는 산맥, 연봉 종주를 위한 능선구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등산로의 기점은 계곡으로 되어 있을지라도 이내 능선으로 올라 정상을 향해 간다.

 

옛길, 즉 소로를 이용한 등산로의 경우 능선부 고개에 도달할 때까지 아주 편한 산행을 할 수 있다. 수백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갔던 선조들은 이미 이러한 길들을 찾아 내었고 왕래가 많은 곳은 고개 이름을 정해 두었다.

 

▲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휴천면 오도재(출처: 규장각)

 

위의 지형도에는 함양군 구룡리 조동마을에서 지안재를 넘어 독가촌을 지나 오도재에 이르는 연로(실선과 점선)가 표시되어 있다. 교통과 도로가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 도로가 함양과 마천을 잇는 주요도로다. 조동마을에는 조선시대 당시 제한역이 있었고 지리산을 찾는 이는 대부분 제한역을 지나 오도재에 오르게 된다. 함양과 마천을 오가는 주민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승려들, 지리산을 유랑하는 선비들 등 많은 이들이 오고갔던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길이었고 변강쇠와 옹녀 역시 이 길을 통해 오도재를 넘게 된다.

 

현재는 도로가 만들어져 '지리산 가는길'로 명명 되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 장사꾼들의 이동 경로를 보자. 조동마을(제한역)을 지나 지안재를 거쳐 해발 773m의 오도재에 오른다. 그리고 촉동, 별악소, 등구동, 창촌동(창원마을), 당흥동(마천면소재지)을 거쳐 백무동에 이른 후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에 도달하게 된다. 비단 장사꾼들 뿐이었으랴.

 

▲ 함양군 휴천면 오도재 - 마천면 금계마을(출처: 규장각)

 

위의 지형도를 보면 오도재에서 금계마을로 내려오는 연로(실선과 점선)가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오도재에서 별악소, 등구동으로 이어지는 연로 외에 오도재에서 촉동으로 넘어가 창촌동(창원마을)로 내려오는 소로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지리산 유랑기를 쓴 함양군수 김종직이 일행과 말을 달렸던 길로 추정된다. 오도재에서 말이 가는데로 두었더니 등구사에 도달하였다고 했다. 등구사는 촉동마을 상단의 옛 빈대궐터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연로를 따라 왔다면 촉동이 아니라 별악소 마을에 도달하여야 한다.

 

창원마을은 마천면내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등을 보관하다 오도재를 넘어 함양으로 옮길 때 사용했던 창고가 있었다. 그래서 창고마을이란 뜻의 창말 또는 창촌으로 불리다가 두 마을이 합해지면서 창원마을로 개칭 되었다. 세월이 흘러 교통이 발달하면서 오도재 길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되었고 그 옛날 주요 교통로에 접해 있었던 창원마을, 등구마을 그리고 특히 마을버스 조차 들어가지 못했던 촉동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마을로 변했다.

 

 

그러던 중, 1988년 부터 2003년까지의 오도재 도로공사를 통해 지리산 가는길이 개통 된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소개 된 지안재에서 오도재로 오르는 구불 구불한 도로, 오도재에서 마천까지 하봉, 천왕봉을 거쳐 반야봉에 이르는 지리산 대부분의 주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지리산 파노라마 도로가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옆 계곡 건너 아직도 옛길이 남아 있다.

 

사실 현재 개통되어 있는 오도재 도로는 연로 보다는 오히려 소로였던 곳에 가깝다. 조선시대 지리산을 오갔던 길 말이다. 오도재-등구마을-창원마을로 이어지는 연로의 경우 현재는 길의 흔적은 뚜렷하나 잡목, 잡초가 무성한 길이 되었다. 다만 길목 곳곳에 묵은 전답만이 쓸쓸하게 방치되어 조선말기의 주요도로였음을 희미하게나마 알려주고 있다.

 

연로는 현재 지방도로 등으로 대부분 바뀌었으나 소로는 이제 유명무실화 된 길이 많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는데 있어 굳이 고개를 넘어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로들은 아직까지 유효하며 등산로가 된 소로도 있고 트레킹길이 된 소로도 있다. 이러한 소로를 걸어보며 옛 선인들이 남긴 지혜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미래의 꿈을 꾸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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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꾼 2014.01.07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행기도 인공위성도 없던 시절에 단순히 측량만 가지고 등고선을 그렸다는게 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요. 제겐 피라미드 건축보다 더한 미스테리입니다. GPS 독도법을 배우려 가끔 들리는데, 처음 인사드리네요.
    항상 안전한 산행을 멀리서 기원합니다.

    ps; 여긴 가평입니다.

    • 푸드앨리 2014.01.13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일제가 만든 한반도 오만분 지도가 일본 스파이(측량기사)들에 의해 한일합방 이전에 만들어졌다더군요. 훈련받은 이들은 최소한의 측량도구를 가지고 하루 20~40km를 걸으며 측량을 해 나갔다고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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