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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뒷편의 낮은 봉우리가 거망산 정상(2013년 6월 5일)

 

거망산은 1184m의 산이다. 그런데 정상 양쪽 능선상에 인접한 봉우리들의 높이가 더 높다. 황석산에서 거망산 능선으로 올라서서 1234봉, 1246봉, 1256봉, 1245봉을 거쳐 거망산 정상(1184m)에 내려 앉는다. 그리고 다시 1187.4봉(위의 사진 위치), 1187.6봉에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거망산을 정상으로 삼았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제 거망산 아래의 역사와 전설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거망산은 남덕유산에서 뻗어나온 여러개의 산군 중 하나이다. 남덕유산 월봉산을 거쳐 금원산으로 올라가 현성산으로 내려가는 산군, 금원산에서 기백산으로 가는 산군, 다시 월봉산에서 거망산을 거쳐 황석산으로 가는 산군이 그것이다. 거망산과 기백산 사이의 계곡은 심진동 계곡이다. 현재는 용추계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심진동 즉, 용추계곡의 초입에 매가 웅크리고 아래를 쳐다보는 형상의 매바위가 있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꿈을 해몽해줘서 조선 개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무학대사가 있다.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지터를 놓고 정도전과 대립을 하였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무학대사는 심진동으로 찾아들게 된다. 그리고는 누가 보아도 매을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바위를 발견하고는 분명 이 계곡 어딘가에 꿩이 알을 품은 형상이 있을 것이라며 찾아 나선다.

 

그곳이 바로 거망산 자락 현재의 은신암이다. 거망산이란 산명은 무학대사가 은신암에서 은거를 하면서 중생제도의 그물을 던졌다는데서 유래하였다. 거망산 정상은 무학대사가 던진 그물의 중앙에 위치한다. 조선의 궁궐터 자리에 사찰을 세울려고 했던 무학대사, 그 사실을 알고 사사건건 무학대사를 방해했던 정도전, 꿈을 이루지 못한 무학대사가 은거를 하며 못다한 꿈을 펼치고자 했던 거망산, 지금도 많은 산행객들이 그 그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거망산 정상(2013년 4월 10일)

 

거망산은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은거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국군의 빨치산 토벌작전에 의해 유서 깊던 장수사가 불탔다. 비록 허물어졌었지만 일주문(장수사 조계문)만 화마를 피할수 있었고 후에 보수공사와 더불어 새롭게 단장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정순덕의 이야기를 풀어보자.

 

지리산 자락, 산청 삼장 사람인 정순덕은 16살의 새색시였다. 빨치산에게 부역을 했던 남편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자 경찰은 정순덕에게 남편이 있는 곳을 밝히라며 고문을 가한다. 참다못한 정순덕은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찾아낸다. 기쁨도 잠시, 국군의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에 의해 대다수의 빨치산들은 지리산에서 가장 험준하다는 대성리 협곡으로 모여들게 된다.

 

국군은 108발의 폭탄을 실을 수 있다는 B52 폭격기를 동원하여 삼일밤낮으로 포탄을 퍼부어 대성리 일대를 초토화 시킨다. 이때 남편을 잃은 정순덕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이곳 거망산과 월봉산, 기백산 등지에서 복수심에 불타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빨치산 활동을 시작한다. 거망산에서 국군 1개소대가 정순덕 일행에게 붙잡혀 무장해제 당한 뒤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하산했다는 일화도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거망산 전체 숲길 노선도와 관리 포인트

서상 소로마을-주능선 헬기장(2011년 5월 9일)

 

서상면 오천마을-거망산 정상(2011년 4월 28일)

 

거망산은 역시 가을철의 억새 군락지가 최대의 구경거리다. 정상부는 물론이려니와 은신치로 통하는 거의 대부분의 거망산 능선에 촘촘하게 억새 군락지가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가을철에 거망산에 올라보지 못한게 아쉽다.

 

거망산에 오를 때 마다 찾는 곳은 정상 아래의 거망샘이다. 사실 이 샘 만큼 변덕이 심한 곳도 없으리라. 그 맛이 수시로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휴식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만큼 달콤하다. 오히려 난 거망산 정상 보다는 이곳이 좋다.

 

무학대사가 은신했다는 은신암을 거쳐 억새군락지를 만끽하며 거망산 정상에 도달하는 은신치 기점, 황석산 암봉들의 짜릿한 남성적인 기운을 받으며 여성의 부드러운 느낌을 가진 거망산까지 종주하는 유동마을 기점, 불당골 시원한 계곡을 거쳐 주능선 분기점에 도달한 후 황석산으로 가야할지, 거망산으로 가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장자벌 기점,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에 감탄하며 정상 바로 아래 거망샘 사거리에 도달하는 지장골 기점, 어렵지 않게 거망산 정상까지 인도해 주는 사평마을 태장골 기점 등은 정식 등산로이며 산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산로 구간이다.

 

일부 등산객들의 경우 서상방면의 비정규 등산로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하산의 초입은 길이 뚜렷하나 중간지점에서 부터 길이 끊어져 버린다. 지형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어려운 하산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접 마을과의 먼거리, 골프장 펜스로 인한 숲길 단절, 사유지 침범, 교통의 편리성 부족, 위험요소 등의 이유로 권장하는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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